모든 언어에는 주변 문화권(언어권)에서 들어온 유입 언어들이 반드시 스며있다.
한국어에 녹아든 한자와 주변 언어들의 영향을 이해하고 비교해보기 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가장 많은 어휘를 가진 영어의 예를 먼저 들어보겠다. 영어 또한 역사 속에서 접촉한 다양한 이민족의 언어를 흡수하여 오늘의 현대영어에 이르렀다. 영어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초기 영어는 西게르만족 언어 계열의 고대영어인데, 현대 영어에서 이 고대영어의 비율은 (어휘 기준) 30%가 되지 않는다. '영어의 역사'에 의하면 26% 이하라고 한다. 1천년 전 노르망 정복을 만난 프랑스어 계통 어휘와 2천여년 전 로마로부터 유래하여 들어온 어휘가 각각 30%에 육박한다. 고대 그리스어로부터 직접 유입되었거나 유래한 과학과 의학, 기술 용어들도 상당수다. 이러한 구성비를 보면, 우리 한국어 속에도 한국어의 원형인 고대한국어의 어휘가 전체 어휘에서 30~35% 정도에 머문다는 분석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어휘의 기원을 가리는 비율분석은 언어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분석한 것으로, 다소 차이가 있는 연구결과물들을 서로 참고하여 학자들이 대개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대략을 산출한 것이다.
<현대 영어에 녹아있는 기원 언어의 비율>
옥스포드 영어사전(OED)은 단어의 어원에 대해 상세한 기원을 제공하는데, 그 뿌리는 대개 라틴어, 프랑스어, 고대영어, 게르만어, 그리스어 등이다.
영어의 원뿌리는 서게르만어군(群)에 속한 앵글로색슨족 언어다. 본래의 고대영어는 영어 중 일상 언어, 기본 생활언어에 사용되는 어휘들의 대부분을 지배한다. 하지만 전체 영어 어휘에서 차지하는 고대영어의 비중은(앵글로색슨족을 침략해온 북방 바이킹족의 언어까지 포함하더라도) 26%를 넘지 않는다. 오히려 프랑스어와 라틴어가 각각 29%로, 영어 어휘의 60% 가까이가 프랑스어와 라틴어에서 유입되었다.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어휘도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영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된 것은 20세기 이후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도 유럽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였다고 한다. 영어에 들어온 각 언어의 영향은 분야가 서로 다른데, 과학과 의학 분야의 언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용어가 지배적이며, 법과 정치 분야 언어는 라틴어의 영향이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다.
(* Albert C. Baugh and Thomas Cable's, ‘A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
1. 프랑스어 ( ~29%)
노르망 정복(1066년)에서 유래한 프랑스어가 많은 영향을 준 어휘는 정치(정부, 궁정), 예술(발레, 요리), 문화(예법과 문학) 관련 어휘들이다.
ex: justice, adventure, royal, cuisine 등.
2. 라틴어 ( ~29%)
르네상스 시대와 법적, 기독교적 연결을 통해 많은 라틴어 단어가 영어에 스며들었다.
ex: agenda, formula, species, describe.
3. 게르만어 (고대영어 및 고대 북유럽어, ~26%)
게르만어원에서부터 일상 어휘와 기본문법(대명사 접속사 전치사)이 형성되었다.
ex: house, father, water, sky, eat.
4. 그리스어 ( ~6%)
과학 의학 및 기술 용어들이 영어化
ex: biology, democracy, philosophy, telescope.
5. 그밖에 ( ~10%)
중세의 교역, 식민지개척, 문화교류 등을 통해 다양한 언어가 영어에 유입되었다.
- 이탈리아어 piano, opera, volcano.
- 스페인어: tornado, canyon, cargo.
- 덴마크어: Dutch: yacht, easel, cookie.
- 아랍어: algebra, alcohol, zero.
- 인도어(힌디, 타미르어): shampoo, bungalow, jungle.
- 일본과 중국 등: sushi(스시), Tsunami(쓰나미), typhoon(태풍), kung fu(쿵후)
<현대 한국어에 녹아있는 기원 외국어의 비율>
한국어 역시 고대 한국어에 여러 종족의 언어가 섞이면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 한국어의 뿌리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가장 멀리는 9천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농경족에게서(요하문명) 유래되었다고 하며, 이후 신석기시대인 5,500년 전쯤 한국어-일본어계와 원시 몽골어-퉁구스어계로 분화된 후 청동기시대부터 원시 한국어로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 논문. 2021년)
이 밖에도 여러 가설들이 있지만, 최소한 고조선이 성립된 5천년 전쯤에는 원시 한국어의 꼴이 갖춰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문자를 빌어 쓰며 받아들인 중국의 한자다. 한국어 고유의 문자 훈민정음이 사용된 것은 1443년으로, 아직 6백년도 지나지 않았다. 일상언어 외에 학술언어, 의식(儀式)언어와 전문용어들 가운데 한자어가 많이 들어오게 된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1. 한자어(중국: ~60~70%)
ex: 사랑(사랑), 문화(문화), 역사(역사), 경제(경제).
2. 고대 한국어 ( ~30-35%)
주로 일상생활과 비공식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고유 한국어 어휘들.
ex: 엄마, 물, 하늘, 먹다 등.
3. 일본어 ( ~5%)
일제 강점기(1910~1945)에는 특히 정부, 기술, 현대생활 방식 등의 분야에서 일본식 제도, 기술의 영향과 함께 많은 일본어가 한국어로 유입되었다. 빵과 같은 서구에서 유래된 최신 문물의 명칭이 일본어化된 후 일본어의 일부로 한국에 유입된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식민 잔재의 청산이란 차원에서도 일본식 한자어들을 알아듣기 쉬운 순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간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식 한자어에 익숙한 노년세대와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 사이에는 언어의 이질화가 특히 큰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일본어의 필요성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않는 데다 한자어 지식마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일본어는 일본식 한자어의 퇴조와 함께 한국어 속에서 비중이 더욱 줄어드는 추세다.
ex: 가방, 빵, 단무지
4. 영어 ( ~5%)
일본어와 달리 영어는 한국어 속에서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은 경제, 군사, 과학기술, 각종 미디어와 대중문화 등 다방면에서 압도적으로 커졌다. 특히 대한민국은 외교안보 경제교역과 인적 교류 면에서도 미국의 그늘에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등으로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21세기 초반에는 영어를 한국어에 이어 ‘제2공용어’로 선언할 만큼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한국어 속에서 영어 기원의 어휘들은 더욱 급속히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인터넷 중심의 신기술이 늘어나면서 영어로 된 용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고 있는데, 한국은 IT의 제조와 활용 모두가 가장 활성화된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 용어들은 아주 쉽게 대중화되고 있다. 지금은 외래어로 사용되는 영어 기반의 기술 용어와 미디어 언어들이 한국어에 편입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일일 것이다.
5. 기타 언어: ~1%
여기에는 몽골어, 만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역사적 문화 교류나 교역, 외교 접촉 등을 통하여 한국어에 편입된 외국어들이 꽤 많다. 직접 유입된 경우도 있지만, 다른 외국어에 흡수되었다가 그 외국어와 함께 들어온 어휘들도 적지 않다.
ex: 호미(호미어, 몽골어), 고로케(크로켓어, 프랑스어,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