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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접미어

07 관계: 부모(父母) 세대에 대한 명칭

by Chiron 21 2025. 1. 2.

 

명칭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부르는 명칭에는 사람들이 그를 어떤 사람으로 보느냐 혹은 믿느냐 하는 개념이 들어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대우가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불리는 호칭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내용이 따르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좀 더 그럴싸한 직함이나 신분으로 불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붙는 명칭의 접미어들 가운데 관계에 의해 생겨나는 명칭이 따로 있다.

관계에 의해 불리는 이 대명사들은 다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형님으로 불릴 때와 아우로 불릴 때,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관계에 의해 불리는 명칭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동시에 상대적이다.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손주의 아버지다(딸이나 엄마나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관계에 따른 접미어를 정리해본다.

 

아버지 부(父), 어머니 모(母)

아버지 어머니의 기본적 개념은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어느 언어에서나 아버지 어머니, 아빠 엄마에 대해서는 고유어가 있다. 한자로 표현할 때,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명칭은 부모(父母), 그리고 친부(親父) 친모(親母)를 쓴다.

- 친부(親父), 의부(義父=繼父, 의붓아버지), 시부(媤父), 시부모(媤父母)

- (아버지의 형제) 백부(伯父↔伯母), 중부(仲父-仲母) 숙부(叔父↔叔母), 계부(季父↔季母, 잘 쓰지 않음), 고모(姑母)

- (조상) 시조(始祖), 조부(祖父↔祖母), 고조(高祖,-父母), 증조(曾祖,-父母)

- 친모(親母), 의모(義母=繼母, 의붓어머니), 시모(媤母),

- (어머니 형제) 외숙(外叔,-父母), 이모(姨母)

 

 

 in-depth learning 

*남자 형제에게 붙이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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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중부-숙부… 등의 명칭과 관련하여, 이것이 아버지 형제들의 순서(서열)과 관련된 구분임을 눈치 챘다면 정확하다. 보다 정확한 순서와 쓰임을 짚고 넘어가자.
옛날에는 아들을 많이 낳는 것이 집집마다의 자랑이었다. 혈통과 가문, 가세(家勢)에 대한 집착이 컸기 때문에, 어떻게든 아들을 낳고, 가능하면 많이 낳는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형제들이 많지 않아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가를 구분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이렇게 아들을 많이 낳던 시대에는 위아래를 순서대로 구분해 부를 명칭이 필요했을 것이다. 단지 개개의 이름, 고유명사만으로는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고, 또 이웃이나 친척 형제들을 언급할 때에도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들에게는 첫째부터 순서에 따라 백중숙계(伯-仲-叔-季)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어느 집에서나 이 명칭에 따라 형제들의 순서를 쉽게 가릴 수 있었다.


* 백-중-숙-계 뒤에는, 부르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그에 맞는 호칭 접미어를 붙인다.

조카들은 아버지 형제들을 ‘백부-중부-숙부-계부’로 지칭하고, 또 그 부인들을 ‘백모-중모-숙모-계모’로 지칭한다. 이것은 삼자에게 지칭할 때 쓰는 말이고 직접 부를 때는 우리 말로 ‘큰아버지’, ‘큰어머니’,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로 호칭하는 게 일반적이다. 양반가에서 문자를 그대로 ‘백부님’, ‘숙부님’ 하는 식의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나, 일반적이지는 않다.

현대에 와서 이 문어체 호칭들은 일반 언중에게서 대개 잊혔고, 백부(큰 아버지의 의미)와 숙부(작은 아버지의 의미), 그리고 외삼촌에게 위아래 상관없이 부르는 외숙(外叔) 정도의 호칭이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옛 글을 읽을 때, ‘백-중-숙-계’의 수식어가 나오면 당사자가 자기 형제들 중 어떤 위치의 사람인가를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중국 고전을 읽을 때, 사람의 이름이 성씨 다음에 고유명사 대신 ‘백-중-숙-계’로 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모두 이같은 순서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해도 무리가 없다.

 

- <사기(史記)>에 나오는 성인 형제, 백이숙제 가운데, 백이(伯夷)는 큰아들이고, 숙제(叔弟)는 셋째아들이다. 영주였던 아버지가 셋째인 숙제(叔弟)에게 후계를 물려준다고 유언하고 떠났지만 숙제는 뜻을 받드는 대신 맏형이 물려받는 게 도리라고 주장하며 집을 나가버린다. 그러자 정치를 싫어하는 첫째 백이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며 고향을 떠난다. 아버지의 군주자리는 자연히(하는 수 없이?) 둘째(仲子)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 백중지세(伯仲之勢)라는 사자성어는 첫째와 둘째라는 의미의 백(伯)과 중(仲)을 쓰고 있다. 형제가 많으면 바로 위아래 형제끼리는 대개 힘겨루기를 많이 하게 마련이다(이것은 거의 본능이 시키는 일이다). 백중지세는 첫째와 둘째가 기싸움을 하는 것처럼 쉽게 판세가 결정되지 않는 팽팽한 대립 상태를 의미한다.

 

- 성인들의 이름을 보면, 관중(管仲)은 집안에서 둘째아들이었을 것이며, 포숙아(鮑叔牙)는 셋째아들이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백-중-숙-계’로 기록된 인물이 무수한데, 떠오르는대로 적어보면 서백(西伯, 周나라의 문왕), 안평중(晏平仲 제나라 재상), 중니(仲尼, 공자의 자), 중유(仲由, 공자의 제자 자로), 항백(項伯, 항우의 숙부), 계찰(季札, 오나라의 공자),

노(魯)나라는 환공(桓公) 이후 군주를 제외한 세 형제의 가문이 세력을 분점하여 나라를 지켰는데 이들을 삼환(三桓)이라 한다. 환공의 세 아들을 의미하며 그 순서에 따라 각기 다른 성으로 불렸다. 군주를 제외한 둘째의 가문이 맹손, 셋째 가문이 숙씨, 넷째의 가문이 계씨다. 
(참고로, 일본사람들 이름에서도 예전에는 一郞(이치로) , 次郞(지로, 또는 치히로)과 같은 남자 이름이 많았는데, 형제의 차서를 따른 이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