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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에 관한 접미어

13. 정치 제도: 정(政) 치(治)

by Chiron 21 2025. 3. 4.

5. 제도에 관한 접미어

사회의 시스템에 관한 접미어

 

13. 정치와 전쟁 편

고대에 인류가 번영하면서 지역과 종족 단위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자라 도시가 되었으며, 도시와 도시들은 국가를 형성하고 강력한 지도자와 그의 세력들을 통해 국가는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을과 마을이 서로 충돌하거나 협력하는 관계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나아가 도시와 도시의 경쟁, 국가와 국가의 경쟁은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집단끼리 간섭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협력 아니면 충돌이다.

국가나 연방을 포함한 각 사회집단은 내부적으로 법(法)과 규칙(規則)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고, 대외적으로는 외교(外交)와 협상(協商), 불가피할 때는 전쟁(戰爭)을 통하여 자존(自存)을 지킨다. 이것이 모두 정치 시스템에 관련된 일이다. 

 

<정치에 관한 한자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정치(政治)라고 한다. 현대 개념에서는 다스린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 백성을 하위(下位)개념으로 보고 위에 앉아 가르치고 다스린다는 개념은 왕이 다스리던(王政) 시대에나 어울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 관련된 전통적 어휘들이 대개 왕정시대부터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에 그 새김에 있어서는 옛적의 표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정(政) 다스리다. 정치, 부정(不正)을 바로잡다.

*正(=정: 바르다, 바로잡다)+攵(攴=복:치다 채찍질하다)

소나 말을 끌거나 양떼를 몰 때, 목동들은 손에 채찍을 들고 짐승이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유도한다. 옛 비유에서는 군주나 종교 지도자들을 흔히 양치는 목자(牧子)에, 백성을 이끄는 일은 목양(牧羊)에 비유하곤 했다.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정(政)의 기본 개념으로 이해했다. 현대의 민주공화정 체제에서는 ‘다스림’보다는 ‘관리’와 ‘책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政, 책임): 공화정(共和政), 왕정(王政), 정사(政事). 정무(政務), 정책(政策), 섭정(攝政), 연정(聯政, 세력연합에 의한 정치), 정승(政丞), 집정(執政), 헌정(憲政, 헌법에 의한 입헌정치), 정권(政權)

- (政, 관리): 행정(行政), 국정(國政), 재정(財政), 정부(政府=행정부行政府), 가정(家政),

- (政, 정치): 정체(政體), 민정(民政), 군정(軍政), 선정(善政)↔악정(惡政=독정毒政=혹정酷政), 정국(政局), 정세(政勢), 정정(政情), 정도(政道), 정강(政綱), 정략(政略), 정당(政黨), 정파(政派), 정변(政變), 정쟁(政爭), 폭정(暴政), 패정(悖政), 정객(政客),

 

치(治) 다스리다. 다듬다, 치료하다, 효험

- (治, 다스리다) 정치(政治), 법치(法治), 자치(自治), 치적(治積), 치국(治國), 치세(治世), 치수(治水)→치산(治山)

- (治, 바로잡다, 지키다) 치안(治安), 퇴치(退治), 순치(順治)

- (治, 의학: 병고치다) 치료(治療), 치유(治癒), 완치(完治), 근치(根治),

- (治, 정치) 대의정치, 독재정치, 민주정치, 세도(勢道)정치, 과두(寡頭)정치, 중우(衆愚)정치, 흑막(黑幕)정치=밀실(密室)정치, 


  이야기  

<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정치를 꾸미는 말 가운데는 현정(賢政) 선정(善政)과 같이 좋은 정치를 의미하는 어휘보다 잘못된 정치(악정惡政)를 꼬집는 어휘들이 더 많다. 이를테면 폭정(暴政) 학정(虐政) 독정(毒政) 혹정(酷政) 같은 말들이다. 이는 각기 폭압적인 정치, 포악한 정치, 독살스러운 정치, 백성을 혹독하게 다루는 정치라는 뜻으로 내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옛날에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함께 깊은 산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찾아보니 한 부인이 무덤들 앞에서 통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연을 묻자 여인이 대답했다.

“예전에 제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돌아가시고, 남편도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들까지 또 호랑이에게 죽었으므로 너무 슬퍼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가 “그런데 왜 이런 산골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까?”하고 물으니 여인이 대답했다. “그래도 여기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지요.” (曰 “無苛政”)

이에 공자가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알아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백성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로구나.”(苛政猛於虎也)

출처: <예기禮記> 243. 단궁하(檀弓下)편


가혹한 정치란 무엇일까. 소수의 지배세력을 위하여 백성들로부터 양식과 돈을 최대한 뜯어가고(세금, 공과금), 수시로 부역에 불러내며, 응하지 않으면 때리거나 협박하고, 툭하면 전쟁터로 끌어가므로, 일반 백성이 굶주리고 치욕스럽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정치다. 정치가 민심을 얻지 못하면, 그 사회와 국가는 불안하고 혼돈에 빠지게 되어 끝내 파멸로 가고 만다. 

구성원 전체가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구성원 모두의 깨어있는 자세와 참여가 좋은 정치를 보장하는 기본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