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나 황제가 있는 나라에서는 왕과 백성들 사이에 귀족(貴族)으로 분류되는 제후계급이 있었다. 이러한 계급제도는 우연스럽게도 중세와 근세까지 동양과 서양의 전통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옛 사회제도를 살피면, 왕과 귀족을 하나의 지배계급으로 묶어서 이르는 말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그들에게 지배를 받는 평민(平民) 계층, 그리고 평민에게조차 부림을 받는 최하위계층으로서의 하인(下人)과 노비(奴婢)층 내부에도 각각 좀 더 세밀한 차등이 있었다. (인간 세계는 아무리 평등을 실현한다 해도 힘과 능력에 따라 층층시하層層侍下로 구분되기 마련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기는 놈 있다’는 속담처럼.
평민 계급 내에는 (동양의 경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차별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직업이 가업(家業)으로 이어져 내려가던 시대에는 이것이 단순히 직업차별에 머물지 않고 가문의 신분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귀족에 해당하는 제후계급의 등급은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 순서의 오등작(五等爵)이 있었는데, 이는 우연치 않게도 유럽 제국들의 귀족 제도와 유사하다. 유럽에서는 지배계급인 왕후(王/侯) 귀족층과 일반백성들 사이에 기사(騎士, knight)라는 계급이 있었다. 동양에는 기사계급 대신 대부(大夫→사대부士大夫) 계층이 존재했는데, 그만큼 사상적으로 실용성보다는 문(文)에 치우친 정치가 우선이었음을 반영한다.
제후들의 작위는 왕으로부터의 신임 정도나 영토 크기 등에 따라 공작(公爵)>후작(侯爵)>백작(伯爵)>자작(子爵)>남작(男爵) 등의 순위로 등급이 매겨졌는데, 등급에 따라 다스릴 수 있는 영지의 크기나 인구 등에 (언제나 엄격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기준이 있었다. 1천년 넘는 봉건제도가 해체된 후에도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이란 작위는 귀족에 대한 호칭으로 존속되었으며, 20세기까지도 (주로 유럽 국가들을 비롯하여 귀족제도가 있던 나라들에서) ‘뼈대 있는 가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유효했다.
유럽에서는 지배계급인 왕후(王/侯) 귀족층과
지배를 받는 일반백성들 사이에 기사(騎士, knight)라는 계급이 있다.
동양에는 기사 대신 대부(大夫→사대부士大夫) 계층이 존재했는데,
그만큼 사상적으로 실용성보다는 문(文)에 치우친 정치가 우선이었음을 반영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군주국에서는 지금도 하나의 '명예제도'로서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주로 정치인, 외교관, 그리고 이웃나라의 왕족 등에게 수여하여 일종의 선물로 활용하고 있다.
또 주로 정치외교적 공헌에 수여하는 공식 기사(騎士, knight) 외에 자국의(영 연방 내부의) 명예를 높인 대중적 스타들에게도 국가훈장과 함께 명예기사(Knight Bachelor)를 수여한다. 정식 ‘귀족’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경(卿, Sir)’으로 불리며 '명예기사단'의 멤버가 된다. 이 명예기사단에는 스포츠 스타인 알렉스 퍼거슨(축구), 모 파라(육상), 닉 팔도(골프), 루이스 해밀턴(카레이싱), 연기자인 마이클 갬본, 데릭 자코비, 안소니 홉킨스, 마이클 케인, 빌리 코널리, 이안 맥켈런, 배리 깁, 패트릭 스튜어트, 음악인 엘튼 존, 클리프 리처드, 톰 존스, 밴 모리슨, 폴 매카트니, 리처드 스타키(링고 스타)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에서도 고려시대에 중국의 제도를 본뜬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귀족 신분제도가 있었으나, 중앙집정제가 강화된 이조(李朝)시대로 와서는 귀족제도가 사라졌다. 대신 왕조 말기까지 양반(兩班)과 상민(常民), 노비(奴婢)를 가르는 신분제도가 존속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침략에 협력한 일부 조선인들이 일본제국으로부터 그 나라 귀족의 신분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진짜 귀족이 된 것은 아니고, '식민지 귀족'에 불과한 신분이었다.
일반적으로 중앙집정제에서는 귀족 대신 관료제도가 정치행정의 중심이 된다. 귀족과 관료의 가장 큰 차이는, 귀족 신분은 세습이 되고 관료의 신분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에 상원/하원을 가르는 의회의 '양원제'나, 왕이 상징적으로 최상부에 존재하면서 실제 정치는 내각에 위임하는 것과 같은 형태의 '내각책임제'나 '의원내각제' 등은 모두 귀족들에게 일정한 세습적 권리를 보장하는 봉건시대 정치방식의 현대적 응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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