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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에 관한/장소에 관한 명칭들

08 지명: 도시와 평야 州 都 城 陽 平 陵

by Chiron 21 2025. 1. 14.

○ 도시나 도읍이 있던 곳 –주(州), -도(都), -성(城)

주(州, 고을 주)가 붙은 지명은 예전부터 큰 도시가 있던 곳이다. 주(州)라는 명칭은 신라시대부터 사용되었고, 이는 중국 한대(漢代)의 행정단위 명칭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지방행정구역으로서 군(郡)과 현(縣)이 있었는데, 여러 개의 군현(郡縣)을 묶은 광역단위를 주(州, state)로 불렀다. 이름에 주(州)가 붙은 도시는 대개 당시의 주도(州都)가 있던 곳이다. 그보다 작은 도시가 있던 곳에는 지명에 –도(都)가 남아있기도 하고, 성을 쌓았던 곳에는 –성(城)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런 접미어를 가진 지명이라면 거기에 작은 촌락 이상의 전성기가 적어도 한 번 이상 있었던 곳으로 짐작할 수 있다.

 

- (州): 경주(慶州), 상주(尙州), 공주(公州), 양주(揚州), 청주, 충주, 완주(完州), 나주(羅州), 전주(全州), 나주(羅州), 진주(晉州), 성주(城州), 광주(光州), 광주(廣州), 파주(坡州), 해주(海州), 원주(原州)

- (城): 성동, 성북, 성남(城南) 성내(城內) 고성(固城 경남), 고성(高城 강원), 횡성(橫城), 성내(城內)동, 성산동, 산성(山城)동, 달성(達城)동, 고성(古城, 대구), 수성동(壽城洞), 개성, 안성(安城), 화성(華城), 의성(義城), 음성(陰城), 구성(龜城), 온성(穩城, -군, 함북), 벽성(碧城, 황해)

 

○ 넓은 들이 있는 지명 –평(平), -양(陽), -전(田)

평(平)이 붙은 지명은 넓은 평야(들)와 관련이 있다. 햇볕을 의미하는 볕 양(陽)도 햇볕이 잘 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너른 분지나 평야 같은 지형을 추정할 수 있다. 버드나무 양(楊)은 양(陽)을 변형한 명칭일 것이다. 순 한국말인 ‘–벌’을 사용한 지명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平): 함평(咸平), 평창(平昌). 평택(平澤), 평양(平壤), 평해(平海) 부평(富平) 평촌, 능평,

-(陽): 양평(楊平), 양주(楊州), 양구(楊口), 단양(丹陽), 양양(梁陽), 밀양(密陽), 광양(光陽), 관양

-(벌): 벌교 

 

 

○옛 왕도의 흔적 릉(陵)

릉(陵)은 언덕(작은 산)을 의미하는데, 옛날 왕들의 무덤(王陵)들은 대체로 크기가 언덕만큼 컸기 때문에 자연히 왕들의 무덤을 의미하는 말로 굳어졌다. 옛 왕들의 무덤은 대개 도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성했다. 간혹 왕들이 가마를 타고 참배할 때 왕궁으로부터 너무 멀리 행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도성에서 1백리 이내에 무덤을 쓰는 것이 원칙이었다. 서삼릉(西三陵), 서오릉(西五陵) 등은 조선의 촌수가 가까운 왕이나 그 가족들 릉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각 무덤마다 고유의 ‘–릉’ 이름이 붙어 있다. 종종 한양에서 백리 넘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릉(陵) 지명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대개 왕족 혈통의 사람들이 살다가 묻힌 곳이다.

 

- (왕릉) 서삼릉, 서오릉, 홍유릉(洪裕陵=洪陵과 裕陵=금곡릉), 선정릉, 태릉

- (왕족릉) 정릉(貞陵), 강릉(江陵, 강원도),

- (지명) 강릉시, 공릉동, 능동, 능원(陵園)리, 능내리

 

그런데 조선시대 이전으로 가면 우리 땅에는 삼국시대나 그 이전, 석기시대부터 지역마다 고대 부족국가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런 나라들이 있던 곳에는 옛 부족장(왕)들의 오래된 무덤들이 남아있는 곳들이 꽤 많다. 고대국가의 도읍이 있던 곳에는 지명에 능(陵)이나 묘(墓), 또는 왕국을 연상케 하는 지명들이 얼마든지 남아있을 수 있다. 고분리(古墳里), 지석(支石里) 또는 –면(面)과 같은 지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지자체 차원에서 옛 도읍의 전통을 되살리는 사업들이 활발하다. 지역의 도시계획이나 개발사업을 통해 도읍 유적과 왕릉(고분) 등을 재건하기도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고분로(古墳路), 왕릉(王陵路) 같은 새 도로명 주소가 부여되기도 한다. 옛 대가야의 도읍지인 경북 고령군 고령읍은 아예 읍의 이름을 ‘대가야읍’으로 바꾸기도 했다.